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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조선일보]
시성(詩聖) 두보의 말년은 비참했다. 세낸 배 한 척으로 상강(湘江)을 오르내리며 2년을 홀로 유랑했다. 고질병인 천식과 학질에 중풍까지 덮쳐 오른손을 쓰지 못하고 귀도 눈도 침침해졌다. ‘배가 고프면 집집마다 쌀을 빌리고/ 괴로울 땐 곳곳에서 술을 얻어마신다’는 어느 가을날의 시구가 피폐한 생활을 말해준다. 그는 모처럼 얻은 쇠고기를 급히 먹다 체해 숨졌다. 59세 때였다. 요즘으로 치면 일흔 나이에 해당할 노년이었다.
▶천하의 시인이 어두운 배 안에서 혼자 게걸스럽게 먹는 마지막 모습은 상상만 해도 참담하다. 노인들의 외로운 식사에는 그렇게 짠한 데가 있다. ‘…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/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/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…파고다공원 뒤편 순댓집에서/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, 쩍 벌린 입이/ 나는 어찌 이리 눈물 겨운가.’(황지우 ‘거룩한 식사’)
▶대가족 시절 노인은 가장(家長) 아들과 함께 겸상을 따로 받는 집안의 어른이었다. 그 밥상에 가장 좋은 음식을 가장 먼저 올렸다. 지금 장년층이라면 어린 시절 윗목에 소박하게 차린 밥상에 앉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푸짐한 상을 부럽게 힐끗거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. 몇십 년 새 파고다공원 뒤 싸디 싼 순댓국밥이라도 사드실 노인이라면 형편이 좋다고 치는 세상이 돼버렸다.
▶2500원짜리 결식아동 도시락이 온 국민을 좌절시킨 게 엊그제 일이다. 그런데 결식노인들에게 주는 무료 급식의 한 끼니 값은 1520원이라고 한다. 결식 어린이용과 노인용 도시락을 함께 마련하는 복지관들은 노인들 반찬이 덜 할 수밖에 없다는 데 난감해한다. 어느 복지관의 메뉴를 보니 아이들 도시락의 베이컨 대신 노인들에겐 돼지고기를 넣고, 우엉조림은 된장국으로 때우고 있었다.
▶미국도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 자동차로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(Meals on Wheels)가 급식소시스템과 별도로 가동되고 있다. 연방 노인급양프로그램(ENP)은 2003년에만 310만명에게 2억5800만 끼니를 공급했다. 쇠고기부터 채식까지 다양한 표준차림의 한 끼 값이 4000~5000원이고 배달비용 1000여원이 붙는다. 무엇보다 우리가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은 정부예산의 3.5배에 이르는 기부금이 급식사업을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. 5년이나 급식비를 묶어둔 채 사각지대에 방치한 우리 정부도 괘씸하지만 우리 모두의 무심함도 돌아봐야 할 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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